마키아벨리를 평가할 때는 그의 저작 전체를 머릿속에 넣고 『군주론』을 봐야 한다. 그의 저작에는 보수적 요소와 개혁적 요소 그리고 혁명적 요소가 공존한다. 어느 하나의 정치적 방향에 치우쳐있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이성 혹은 자기보존능력이었다.
진영 논리를 초월한 현실주의자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16세기에 공화제와 군주제는 현대식 표현으로 좌ㆍ우 진영의 정치적 입장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귀족과 평민의 정치적 대결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로마사 논고』, 제1권 제4장) 이들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통해서 자유를 증진하는 법과 제도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 비록 기회주의자로 오해받고 실패했지만 – 서로 다른 성격의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쓰면서 진영논리를 넘어서려 했다. 1512년에 공직에서 물러난 후 마키아벨리에게 저술활동은 정치적 행위의 일환이었다.
마키아벨리가 마음속으로 공화제를 선호한 것은 그가 도덕적이거나 특정 이념을 추구해서가 아니다. 공화제가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군주제보다 효율적이라고 본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화제를 추진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의 덕(virtù)을 갖춘 강력한 지도자/군주(uomo virtuoso)가 (법)질서를 확립하고 위기를 극복해줄 것을 기대했다. 국가이성적 관점에서 진영논리를 초월한 것이다. 참고할 것은 여기서 uomo virtuoso에게 요구된 덕 (virtù)이 중세 시대에 당연시되었던 통치자의 덕과 다르다는 점이다.
후대의 정치인과 이론가들이 좌ㆍ우를 넘어서 선대의 사상가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마키아벨리 사후 400년이 지난 20세기에 이탈리아의 극우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와 사회주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동시대에 마키아벨리의 저서에서 배울 것을 찾았다. 마키아벨리의 저서에 들어있는 이중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의 주장에 현실적으로 유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이론에 내재한 위험 요소
다만, 마키아벨리의 이론에 국가의 이름으로 초법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위험 요소가 내재해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 그것이다. 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킨다는 역설적인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통치자들이 깊은 문제의식과 죄의식 없이 마키아벨리를 빙자해서 악행을 저지르고, 이를 합리화했다.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는 물론 현재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권력을 위해서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불법 및 비법적인 정치 행위가 이를 말해준다.
마키아벨리가 남긴 숙제는 그의 이론에 내재한 위험성을 극복하면서 어떻게 올바른 국가이성을 구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국가가 자기 보존을 위한 목적으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국가이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와 국민에 반하는 정치가 행해지지 않도록 견제하고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법의 이성으로 국가의 이성을 견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형태의 국가이든 현존하는 국가를 무조건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이성은 아니다.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국가인지 아니면 탈선한 국가인지, 즉 어떤 국가를 유지하고 보호할 것인지를 선행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생존 그 자체를 지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16세기의 국가주의자 마키아벨리에게는 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 부분에 유념해야 한다.
도덕에 가치중립적인 마키아벨리식 정치적 이성이 올바른 것인지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중세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정치와 도덕을 분리해서 보았다. 그리고 도덕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의 자율성을 중요시했다. 도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도덕이 정치적 목표 달성에 유용하면 수단으로 활용하라고 했다. 또한 도덕 정치로 오히려 그 도덕과 정치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도덕을 넘어서는 정치를 하라고 했다. 정치적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도덕을 본 것이다. 문제는 선악을 넘어선 이런 정치가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남긴 숙제
마키아벨리가 남긴 숙제를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좌ㆍ우 진영의 정치인들이 마키아벨리에게서 교훈을 찾을 정도로 그는 권력의 가면을 벗기고 정치의 본질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념(Ideology) 틀에 얽매이지 않는 현실주의 정치를 추구했다. 둘째, 현실주의 정치가 몰(沒)가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주의에 입각하더라도 지향하는 목표가 올바른 것인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법치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것은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이성은 대내외적으로 국가 혹은 국익을 정치적 사고와 행위의 절대적 기준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국가의 존재이유인 가치(인권과 자유와 정의 등)를 훼손하면서까지 국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결국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셋째, 마키아벨리의 국가이성은 정치행위에서 합리성과 효율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냉혹한 권력투쟁과 전쟁을 성인군자처럼 할 수는 없다. 정치의 길과 도덕의 길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효율성의 관점에서 도덕을 도구로만 여기는 국가이성은 자기정화 능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정당성의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이론에는 시대를 초월한 천재성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시대적 한계도 발견된다. 문제는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가르침, 즉 국가이성의 의미와 한계를 성찰하면서 마키아벨리를 넘어서려 하지 않고, 대신에 그의 이론을 잘못 이해하고 악용한 사례가 역사적으로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를 경계하면서 다음에는 마키아벨리에게서 유래된 국가이성이 어떻게 근대 초기의 시대정신으로 발전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Comments